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CGV에서 영화판 친구들과 함께 졸리 누님(사실 내가 더 나이가 많겠지만, 뭐 그 분은 영원한 여신누님,,중얼)을 영접하고 왔습니다. CGV 포인트가 꽤 쌓인 걸 모르고 있다가 확인해보니 앞으로 영화 몇 편은 공짜로 보겠네요. 껄껄..
일단 졸리 누님의 카리스마와 몸매, 킬러들의 격투장면들은 확실히 눈요기가 됩니다. 혹자는 광고에 나온 게 다라고도 하던데, 광고를 안 봐서 그런지 나는 볼만했어요.
암살자로서 재능을 타고난 남자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위해 피나는 훈련을 받고 마침내 복수에 성공하지만,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아버지였다!
네타라고 생각 않겠습니다. 영화 시작하고 10분도 안 되서 눈치 챌 수 있었거든요.
나름 반전이라고 깔아 놓은 복수 설정이 딱 모 애니메이션을 떠오르게 하더군요.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많겠지만, 린 타로 감독의 걸작 애니메이션 ‘카무이의 검 (カムイの劍, 1985)’입니다.
‘카무이의 검’에서 주인공은 닌자로서 아직 제대로 훈련받기 전에 이미 조직에 의해 반쯤 죽은 아버지를 가족의 원수인줄로 알고 최후의 숨통을 끊어놓습니다. 이후, 조직에 의해 최고의 닌자로 키워진다는 설정입니다만, 진실을 알게 되어 조직에서 배운 닌자술로 복수를 해나가는 방식이나, 설정상의 기본 골격, 스타일 등이 무척 닮아 있습니다. 주인공 남자의 찌질 연기로 웃음을 주는 초반 허리우드 표 설정만 빼면 말이지요.
‘카무이의 검’ 쪽이 훨씬 스케일은 큽니다.(19세기 미국 서부로 원정을 떠나지 않나, 좀 심하게 오버하긴 하죠.)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원티드 쪽이 낫군요.(졸리 누님이 나오기 때문에 무조건 +20P 된다는 사실은 말 못한다.) 카무이의 검은 제작비 문제던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제작 중간에 문제가 발생해서 중반 이후로는 러닝타임 채우기에 급급한 비운의 걸작이었습니다. 초중반까지는 정말 손맛 애니메이션 최고의 걸작소리를 들을만하지요. 사실 스타일이라면 개인적으로 89년 작 ‘미궁물어’의 오프닝 쪽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그건 하나의 이야기로서 완성된 구조를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요즘 한국 영화계, 방송계 돌아가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장르귀신’들이 점점 주류로 자리 잡아가는 것에 어떤 희열 같은 걸 느끼곤 합니다. 그때 그 시절, 나름 최첨단의 어두운(?) 취미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이유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하기가 그렇게나 힘들었었는데, 이제와 보니 나만 그리 괴물처럼 그 냄새나는 동네를 맴돌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때 쌓은 ‘장르귀신’으로서의 경험이 헛되지 않아, 내 창작물들로 그 흐름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되었음에 뿌듯함도 느낍니다.
확인해보니 영화 ‘원티드’의 각본가가 세 명이나 되네요. 아마도 그들 중에도 그 시절 ‘카무이의 검’에 열광했던 장르귀신 동지가 한두 명 끼어있는 건 아닐까요?